삶은 또 그렇게 살아진다... 일상 이야기

2014년 4월 15일 새벽 3시 33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모든 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암 선고를 받은 후 이미 림프절과 복막으로 암이 전이된 상태인 걸 안 후에는 치료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진통제에 의지해서 지내셔야 했다. 그래도 2월 말까지는 스카이프로 얼굴을 보면서 통화도 했는데 3월 초부터는 그것도 힘들어졌다. 옥시코돈이라는 진통제를 계속 드시고 계셨는데 그것 조차도 잘 듣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약을 한치수 올리는 순간 엄마와는 제대로된 대화조차 힘들어졌다.

3월 말부터는 그렇게 어렴풋이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아, 이제 끝이 다가오는구나... 난 아직 엄마랑 하지 못한 일이 많고, 보여드리지 못한게 많은데 그런데도 하늘은 무심하게 엄마를 데리고 갈 준비를 하시는구나.... 그리고 4월 11일 병원으로 결국 들어가셨고, 그렇게 엄마는 내 곁을 떠나셨다....

난 4월 9일날 과에서 주는 Outstanding Graduate Professor 상을 받았었다. 일어나서 통화하실 기력도 없으셨던 엄마... 그날 집에 전화해서 아빠가 엄마 귀에 대준 전화기로 엄마 나 상받았어... 라고 울면서 얘기하니깐 엄마가 그래 고맙다... 그렇게 한마디를 겨우 하셨었다. 그게 내가 엄마랑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많이 아파하셨다고 한다. 정말 많이.... 암이라는 거 그렇게 무섭고 또 무서운 거였다.

나도 뭔가 느꼈었던걸까... 11일날 동생이랑 얘기를 좀 해야할 것 같아서 일리노이에 동생집에 가있었다. 결국 엄마 임종 소식은 동생과 함께 들었다. 전화를 받은 순간 그냥 멍하게 온몸이 차가운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 한달간 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다행이었던 건 학기말이라 너무 바빠서 뭐 울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 하루종일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냥 좀비처럼 기계적으로 수업을 하고 미팅을 하고 페이퍼를 매기고... 더 의식적으로 일만 생각하고 한달을 보냈다. 엄마 생각을 하기시작하면 그냥 미쳐버릴 거 같아서 난 그렇게 밖에 할수가 없었다.

며칠전 학기가 끝나고 지금 난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꼬잘난 영주권 때문에 엄마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도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엄마는 오지 말라고 하셨었고... 난 지금도 엄마가 원하는데로 가지 않은 게 잘한건지도 잘 모르겠다. 영주권 중간이라도 갔으면 뭐 또 방법은 있었을텐데... 3월말 언젠가 엄마랑 짧은 통화를 하면서 엄마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울었던 기억이 어제같다.... 이제는 그렇게 울면서 전화할 사람도 내 곁에는 없다.

아직도 엄마가 집에 있을 것 같다. 전화하면 엄마가 받을 것 같고, 저녁은 먹었냐고 일은 바쁘냐고 전화와서 물어볼 것 같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집에가서 엄마한테 얘기해야하는데, 다 수다떨고 그렇게 엄마랑 웃어야하는데 난 이제 더 이상 그럴 사람이 없다...

이렇게 빠를 줄 몰랐는데....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줄 몰랐는데.... 아무리 가슴을 치고 울어도 이제 내 곁에 엄마는 없다....

웃긴 건 죽을 것만 같았는데 삶이라는 건 또 그렇게 이어지더라. 어느 순간 잠도 오고, 밥도 먹고, 그렇게 또 내 삶은 그렇게 살아가지는 것 같다... 또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겠지.... 엄마가 없는 삶이 또 이렇게 살아지게 된다는 게, 난 어쩐지 화가 난다.....


엄마 퇴원

오늘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신다. 

역시 기적이라는 건 없었다. 예상했던데로 췌장암이였다. 게다가 종양의 크기가 5 cm... 난 이렇게 큰 종양이 췌장에서 자랄 수 있다는건 들어보지도 못했다. 엄마가 그렇게 될 때까지 난 도대체가 뭘하고 있었던 걸까... 가슴이 정말 찢어진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건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없어보인다는 것. PET 스캔 결과는 내년에 보기로 했고, 일단 MRI 결과만 가지고 주치의랑 얘기했는데 간,위, 페, 척추, 신장 등에는 전이가 없다고 한다. 복강에 복수가 약간 차서 전이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PET 스캔 결과가 나와야만 확실할 듯 하고....

가장 큰 문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 일단 종양 크기가 너무 크고 종양이 혈관에 붙어있어서 현재로써는 수술은 힘들거라고 한다.... 난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는데, 현재 엄마는 극구 반대하신다. 항암치료에 대해서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어디 시골에 가서 요양하시고 싶으시다는데 난 거기에 찬성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정말 지금은 머리가 터져버릴거 같다. 이 모든게 그냥 꿈이었음 좋겠다...

내 인생 최악의 소식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것도 거의 5개월 만이다. 이번 학기는 유난히 바쁘고 힘들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서 블로그는 생각도 안하고 그렇게 보냈다. 

겨우 학기를 마무리하고 동생집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 온게 지난 수요일. 한국에서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 췌장암인것 같다고 한다.... 

이틀동안은 너무 많이 울어서 어떻게 똑바로 생각할수도 없었다. 그냥 억울하고 화나고 슬프고 또 억울했다. 왜 우리 엄마일까 왜 지금일까 그렇게 울고 통곡했다. 영주권 수속때문에 한국에 나갈 수도 없는 나로써는 여기서 그냥 울고 또 울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었다. 

어제 엄마가 더 큰 병원에 입원하셧다. 좀 더 세밀하게 정말검사를 받기위해서다. 며칠동안 병원에 계시면서 PET 스탠, mri 등등 모두 하시고 종합적인 결과를 듣게 되실거다... 

지금 난 너무 무섭다. 나랑 평생 계실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황당하게 빨리 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왜 하필이면 그 어렵다는 췌장임일까... 가슴을 치고 또 쳐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최악의 결과만은 아니길 지금 빌고 또 빌고 있다. 

너무 무섭다. 



엄마아빠랑 공항에서 이별하기.... 일상 이야기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의 7월이 훌러덩 지나고 이제 8월이다. 개강까지는 약 2주 넘게 남았다.

6월 말에 오셨던 부모님은 내일 서울로 돌아가신다. 부모님 배웅하러 시카고에 내일은 갈 예정이다. 알아서 가실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그냥 헤어지기는 내 마음이 너무 아쉽다. 좀 멋진 곳도 보여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리고 하고 싶었는데 미국 중서부 시골에 살다보니 그냥 bbq 몇번에 근처 야구 경기 보러간게 다인 듯 싶다..... 

처음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 날이 떠오른다. 무슨 신파 영화라도 찍는양 인천공항에서 펑펑 울면서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어디 죽으러 가는 것 마냥... 그 이후에도 여전히 부모님과 헤어지는 건 너무나 힘들다. 최근 몇년간은 주로 부모님이 미국에 오셔서 한 한달에서 두달 계시다가 한국으로 들어가시는데, 출국장으로 들어가시는 부모님 볼 때마다 난 눈물바다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난 도대체가 부모님과 헤어지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십대 중반 미국으로 나와서 십년 가까이 2년에 한번 꼴로 부모님 얼굴을 보면서 살았다. 지난 십년간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1년도 되지 않는다.... 엄마는 니가 한국에서 있어도 바빠서 자주 얼굴 보겠니 라고 하시지만, 그건 분명 아니다. 한국이라면 내가 아직 미혼이다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 확률도 높고, 혼자 나와서 산다고 해도 언제든 보고 싶으면 집에 가서 보면 그만이다. 비자문제부터 비행기까지 정말 1년에 한번 부모님 뵙기도 힘든 내게는 부모님과의 이별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다. 벌써부터 내일 이별할 생각을 하니 눈물이 고여온다... 엄마말마따나 낼모레는 마흔인데 나....

65세의 엄마는 며칠 내내 부엌에서 사셨다. 김치에 깍두기, 콩장, 불고기, 만두 등등을 하셔서 냉동실과 냉장실에 꽉꽉 채워주시고 계시는 중... 내가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당연히 소용은 없다. 그 모습이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워서 또 마음이 아프다.

20대의 내가 미국에서 30대가 되었고, 지금 40대를 향해간다. 그 사이에 내 부모님은 60대 70대가 되셨고, 참 많이도 늙어셨다. 그 늙으신 모습을 보는게 난 그냥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무섭고....

8월 5일 2시경 시카고 국제공항에 오면 출국장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30대 여성을 볼 수 있을 듯... 

마음이 벌써 아린다.

6월 한달 일상 이야기

정말 미친듯이 6월이 지나갔다.

온 집안 식구들 머리를 매우 아프게 했던 동생의 비자문제는 기적적으로, 하지만 속을 썩일 만큼 다 썩혀놓고 해결됬고, 그와 함께 갑자기 부모님이 미국행을 결정하셔서 (마일리지 모아놓으신걸로 확 긁어버리셔서...), 2주전 부모님이 이 미드웨스트 촌구석에 왕림하셨다. 시카고까지 가서 부모님 픽업해서 시카고에서 3일정도 지내면서 구경 쪼매 하고, 야구좋아하시는 부모님과 시카고 컵스 경기장 가서 야구 한경기 때리고, 시카고 피자 먹고, 미시건 호수에 발가락 좀 집어넣고 그리고 집으로 리턴... 특히 아빠가 엄청난 야구광인데 나 미국에 있는 동안 MLB 야구장 모두 모시고 가는게 내 작은 꿈이다.... 헤헤

가장 보고 싶어하셨던게 아무래도 내가 일하는 학교. 캠퍼스랑 내가 일하는 오피스랑 보여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셔서 내내 무척 뿌듯했다. 뭐 난 앞으로 다가올 테뉴어의 공포에 벌써부터 초긴장 모드지만서도.....

일주일 정도 더 우리집에 있다가 일리노이로 있는 동생집으로 갈 예정. 방하나 짜리 작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집에서 4식구가 북적거릴 생각하니 아찔하지만 그래도 실로 몇년만에 4식구가 모이는거니 그냥 참 좋다.

여름학기는 7월 중순에 종료예정... 온라인으로 가르치는 이 수업 참말로 재미없다!!! 그래도 받는 돈이 있으니 꾹 참고 일하는 중... 

아직 여름학기가 끝나지 않아서 아침에 학교나와서 일하다가 오후에 들어가는데, 집에들어갔을 때 누군가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이렇게 좋은 건줄은 몰랐다. 집에가서 초인종 누르면 엄마가 문열어주면서 "공부 열심히 했어?" 하시는데 그냥 참 좋다. 그나저나 난 이나이에도 직업 때문인지 저 소리를 듣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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